특히 부친께서 별세(別世)하자 그는 깊이 애통(哀痛)해 하며 묘소 앞에 자그마한 여막(廬幕)을 지어놓고 그 곳에서 3년동안
거처하였다.
그는 육식(肉食)을 입에 대지 않고 소찬(素饌)으로 일관했으며, 한번도 자신의 집에 내려오지 않는 등 선친(先親)의 묘소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의 뛰어난 효행(孝行)과 마음가짐은 마침내 조정(朝廷)에까지 알려져 고종(高宗) 30년 (1893년) 6월 효자 정문(旌門)이
이곳에 건립되고 만인의 귀감(龜鑑)으로서
표상(表賞)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