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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충신, 자(字)는 사수(士秀), 호(號)는 피구자(披逑子) 외암(畏菴), 본관은 순천(順天),
성현도찰방(省峴道察訪) 훈(壎) 의 아들이며, 영의정(領議政) 류(流)의 부친이다.
선조 24년(1591) 의주목사(義州牧使)로 있을 때 서인(西人) 정철(鄭澈)의 당(黨)으로 몰려 파직 투옥 되었다가 선조
25년 (1592) 임진왜란이 일어 나자,신립(申砬)과 함께 왕의 특명으로 충주(忠州) 의 방어에 나섰다. 김여물은 신립에게 새재의
고수 를 주장하였으나 신립은 듣지 않았고 마침내 왜적 에게 새재를 내주고 말았다. |
또 불리하면 중앙으로 가서 한양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으나 신립은 또 듣지 아니하였으니, 김여물은 미리
패할 것을 알았다. 우리 군사가 패하자 신립이 김여물에게 묻기를 “ 공은 살기를 원하오” 하니 김여물은 웃으면서 “내 어찌 죽음을
아끼리오”하고, 함께 탄금대(彈琴臺) 아래 이르러 적 수십 명을 맨손으로 죽이고 물에 투신하였으니, 이때 공의 나이 45세였다.
이듬해 의관을 거두어 안산(安山) 동장리(洞長里)에 장사지내고 정려를 세웠다.
후에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장의(壯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