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안산의 인물들

표암 강세황

위원장님 2006. 2. 3. 10:55



본관 진주(晋州). 자 광지(光之)·호 첨재(添齋)·표옹(豹翁)·노죽(路竹)·산향재(山響齋)·
표암(豹庵)·시호 헌정(憲靖),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 8세 때 시를 짓고, 13~14세 때는
글씨에 뛰어난 솜씨를 보여,소년기에 쓴 글씨 조차도 병풍을 만드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32세 때 가난으로 처가가 있는 안산으로 이주하여 벼슬을 한 60대에 이르기까지 약 30년간의
안산시절은 그가 청장년을 모두 보내며 학문과 예술이 발전하고 성숙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또한 표암유고(豹菴遺稿) 단원기(檀園記)에 강세황이 쓴 글에는
‘처음에는 사능(士能 김홍도의 호)이 어려서(7~8세) 내 문하에 다닐 때에 그의 재능을 칭찬
하기도 하였고 그에게 그림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중간에는 관청에 같이 있으면서 아침저녁으로 함께 거처하였고 나중에는 함께 예술계에
있으면서 지기다운 느낌을 가졌다’라고 하였다.

그가 활동하던 조선후기 화단의 성격은
‘다양한 화법의 전개와 새로운 회화관의 탄생’
으로 일컬어지며, 그 흐름은 대체로 남종문인화
(南宗文人畵)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유행,
풍속화·도석인물화의 풍미, 그리고 서양화법의
수용 등을 들 수 있다.

강세황은 바로 이러한 18세기 문예부흥기로 인식
되는 영·정조 시대에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다른작가들의 작품에 화평(畵評)을 쓰는 방법으로
당시의 여러 회화조류 전반에 깊이 관여하였다.

시(詩)·서(書)·화(畵)의 삼절로 불렀으며,
식견과 안목이 뛰어난 사대부 화가였다.


그 자신은 그림제작과 화평(畵評)활동을 주로
하였는데, 이를 통해 당시 화단에서 ‘예원의
총수’로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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