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안산의 인물들

성호 이익

위원장님 2006. 2. 3. 10:54



오늘날 실학의 대종으로 추앙 받고 있는 성호 이익은
안산이 낳은 조선 후기의 대학자이다. 당시 안산군
첨성리 (지금의 안산시 일동)에서 80평생을 학문에
전념하여 독창적 사회개혁사상을 설파하였다.
성호의 학문은 퇴계이황의 성리학에서 출발하였으나
차차 율곡이이의 경세학문과, 반계유형원의 영향을
받아 천문·지리·율산(律算)·의학에 이르기까지 능통
했고, 남다른 안목으로 서학에 대해서도 동도서기의
관점에서 적극 수용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지닌 성호는 투철한 주체의식과 비판정신을
토대로 '성호사설(星湖僿說)'과 '곽우록(藿憂錄)'을
통해 당시 사회제도를 실증적으로 분석·비판하여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중 당시산업의 주를
이룬 농업을 중시하여 누구나 토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한전론과 노비제에 대한 비판,
양반도 산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사농합일이론은
성호의 대표적 사상이다.

이러한 성호의 사상은 안정복·윤동규·신후담·이중환·이가환·권철신 등에게 전수되었으며,
다산 정약용에 의해 집대성되었다.
오늘날 안산시는 성호기념관을 통해 성호학을 재조명 하고 있다.
성호의 주요 저서로는 '성호집', '성호사설', '곽우록', '11질서', '이선생예설' 등이 있다.

물길 트고 포구 옮겨 방조제 쌓으면

짠기 가시고 벼 자라나 모두가 기름진 땅

반듯반듯 새마을 새거리 이뤄지면

씨 뿌리고 김매고 무슨 걱정 있으리오

그 누가 이 산천 골고루 일궈내어

황무지로 버리는 일 없게 하려뇨?

바다도 뽕밭으로 쉬 바뀌나니

좋은 계책 백성에게 물어 이루라

- 화포잡영(華浦雜詠)중에서 -

(지금의 본오동, 사동, 성포동 일부가 모두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벌이었으며 이 갯벌을
화포라고 하였는데, 성호는 당시의 혜안(慧眼)으로 이를 간척하여 농토로 만들 것을 권고
하였다. 오늘날에 이르러 성호의 희망처럼 안산시민들은 바다를 메꾸어 아파트를 짓고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풍요롭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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