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 양상동 산 16-3번지. 신갈-안산고속도로의 안산 IC 부근이 양상동인데, 안산 IC에서 빠져 나와 우회전하면 양상동 방향이다. 양상동 쪽으로 향하다 보면 아랫보대라는 곳을 지나는데 이곳 에서 윗보대 쪽으로 가다 보면 우측으로 정언벽 선생의 묘갈과 묘역이 보인다. 정언벽 선생의 묘역을 지나 윗보대를 지나면 바로 강징 선생의 묘와 신도비가 나타난다. 봉분 160×600cm, 비신 136×75×20cm, 이수 85×50×20cm 규모이다. 특이한 것은 기단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석인 바위를 파고 신도비를 세워 놓았으며 옥개석 대신 이수가 올려져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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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징은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서예가로 자는 언심(彦深), 호는 소제(少薺)·심재(深薺), 본관은 진주이다. 성종 25년(1494년)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로 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부제학을 거쳐 연산군 10년(1504년)에 우부승지로 재직하였으나 당시 왕에게 사냥을 삼갈 것을 간했다가 낙안 으로 유배되었고 연산군 12년(1506년) 복세암(福世庵)의 이건(移建)을 반대하여 투옥되었다. 그후 중종 반정으로 석방되어 강원도관찰사가 되고 중종 3년(1508년)과 중종 16년(1521년)에 각각 성절사(聖節使)와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전주 경주부윤을 거쳐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그는 중종이 제작한 병풍의 글씨와 명신들의 시문 홍문관에서 올린 정명도의 잠(箴)을 쓰니 당대의 명필이란 소리를 들었다. 이 밖에 글씨로 ‘정익혜공난종신도비명(鄭翼惠公蘭宗神道碑銘) '이 있다. 이 신도비는 인조 25년(1647년)에 건립되었으며 정사룡이 찬하고 조상우가 글을 썼으며 윤덕준이 전액했다. | |||||
안산시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