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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李燦) 선생은 한말(韓末)에서 1920년대 초까지 생존했던 이 고장의 덕망(德望) 높았던 재산가(財産家)·유지로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선생은 일찍이 부농(富農)의 아들로 태어나 그가 생존해 있을 당시만해도 남동(南洞) 일원(一圓)의 토지는 거의 그의 소유라
할만큼 대지주(大地主) 였으며,
대부분의 농토(農土)는 많은 소작인(小作人)들에 의해 경작(耕作) 되고 있었다.
그러나 선생은 평소 마음이 소박하고 인정(人情) 이 두터워 스스로 가난한 민중의 처지를 깊이 헤아려 일부의 땅은 가난한
소작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빚과 소작료(小作料)를 탕감(蕩減)해 주는 등 범인(凡人)이면 생각할 수 없는 큰 덕량(德量)을
베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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